일상 두근두근 설레임으로, 후쿠시마를 잇다 2017/05/27 12:42 by 띠띠

인연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보름 전, 친한 친구가 단체카톡방에 링크 하나를 올렸다. 꼭 가고 싶다, 그런데 가지 못한다, 너희들이라도 가봐, 라는 안타까움이 담긴 말을 덧붙이고서. 별 생각없이 링크를 눌렀다.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하는 “삶의재구성학교 5월 특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강의 연사는 “사야카”와 “히데미”로, MUSUBU를 설립하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이다. MUSUBU는 후쿠시마에서 사람, 지역, 일, 예술, 정보를 연결하는 지역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체이다. 흔히 죽음의 땅으로 인식되는 후쿠시마에서 지역을 살리는 일을 하는 그들이 궁금했다. 해서, 5월 27일 청년허브를 찾아갔다. 다음은 나, 친구, 그리고 MUSUBU의 인연이 낳은 결과물.




특강 홍보 포스터 [출처: 청년허브]



안녕하세요, 저희는


히데미: “미야모토 히데미”입니다.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에서 태어났고 뉴욕에 거주하는 중 입니다. MUSUBU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뉴욕에 산 지는 2년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음악 관계 업무, 레코드 관련 회사에서 광고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중고등학생을 위한 커리어 교육을 하거나, 음악 강의, 그리고 장애 아동에게 취업을 지원하는 NPO에서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참고로, 취미는 낚시입니다. 


사야카: “스에나가 사야카”입니다.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거주하는 중 입니다. 공정무역 커피원두 판매 업무를 했고, 페루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후쿠시마를 아시나요?


사야카: 지금 보시는 게 일본지도인데, 파란 색이 후쿠시마 현 입니다. 도쿄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후쿠시마” 하면 어두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후쿠시마에는 이렇게 이쁜 바다가 있습니다. 맛있는 생선도 있고요, 온천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바다가 있지만 산도 있고요.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당시에 무수부가 주최한 행사인데요, “아침에 바다까지 산책하기”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이쁘고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은 2011년 3월 11일 이후 바뀌었습니다. 아까 “후쿠시마”하면 생각나는 말 중 “쓰나미”라는 말을 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쓰나미는 보시는 바와 같이 세 개의 현에 걸쳐서 왔습니다. 다음 사진은, 대지진이 일어난지 30분 후에 텔레비전에 나왔던 쓰나미의 영상입니다. 또 다음 사진은 지진이 있었던 다음 날의 모습입니다. 원래 은행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단단한 도로 표지판도 엉망이 되었죠. 그리고 원전을 중심으로 한 약 20km 범위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점차 축소되고 있고, 사람들이 조금씩 귀가를 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후쿠시마 현의 지도입니다. 노란 부분은 이와키 시입니다. 이와키시의 크기는 서울의 약 2배입니다. 이와키 시는 원전에서 약 50km 떨어진 장소에 있습니다. 과거 이와키 시 인구는 35만 명이었습니다. 원전 사고 이후 32만 명으로 줄었다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지역(20km 범위 내)에 사는 사람들이 이와키 시로 피난하면서, 인구가 조금 더 늘엇습니다. 실제로 약 2만 4천명이 이와키 시로 대피해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시작


사야카: 원래 이와키 시는 원전 사고 후 대피 지정 구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재난 이후 도쿄 등 대도시에서 물자가 오지 않았어요. 위 사진은 도쿄 시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 제가 직접 가져간 물자들 사진입니다. 저는 당시 도쿄에 대피를 했다가 이와키 시로 돌아가는 길, 구호 물자를 트럭 한 대에 실어 갔습니다. 그리고 1인 가구, 독거노인 등 곤란한 분들에게 나누어주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후 매일 같이 여러 곳에서 물자들을 보내줬기 때문에, 물자 배부 활동은 이후 날마다 하게 되었습니다.


히데미: 저는 당시 도쿄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와키 시가 고향인 만큼 후쿠시마 관련 정보를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야카가 하고 있던 물자 배급 활동을 알게 되어 참여했습니다. 4월 11일 고향 이와키 시 신사에서, 따뜻한 음식을 배부하는 할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찾아갔는데, 그때 처음 사야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아주 심각했는데, 음식을 나누어주는 분위기 및 활동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문아영, 사야카, 히데미, 조미수. 조미수 님은 이번 특강 통역을 맡아주셨다.




MUSUBU


히데미: 그렇게 음식 지원을 하면서, 도와준 사람들끼리 앞으로 어떤 지원, 활동을 할 지 고민했어요. 그러나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사람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즐기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단체 “무수부”(MUSUBU)를 만들었습니다.


사야카: 무수부라는 말은 일본어로 “잇다, 연결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물건과 지역을 이어서 그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간다, 창조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 무수부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히데미: 2011년에 발족해서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무수부의 프로젝트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진 보셨 듯 음식을 나누어주거나 물자를 배부하는 활동을 하면서 자원 봉사들의 센터를 운영하는 것을 4개월 동안 했습니다. 자원봉사 센터에는 지역 사람보다 후쿠시마 외에서 오신 분들,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서핑을 하러 오신 분들이 자원 봉사로 많이 오셨어요.


사야카: 자원 봉사 활동은 다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너진 건물의 쓰레기를 치우거나 쓰나미 때문에 쌓인 집 안의 진흙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무너진 건물 안에서 나왔던 사진이라던가, 소중한 오래된 물건은 깨끗하게 정리해서 소유자에게 돌려드리는 활동도 했습니다.


히데미: 자원 봉사 활동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후에는,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자”라는 처음의 모토를 실천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쓰나미 피해를 입은 행사장을 정리해서 음악 라이브를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행사장에서는 아직 전기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였어요. 화장실을 갈때는 손등을 들고 가야 했고, 발전기를 가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 끝에 결국 라이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음악 관련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담당 아티스트 중 “쿠루리”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재앙 이후, 쿠루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저희에게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첫번째 콘서트를 쿠루리에게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아이들이 서예 워크숍을 하는 사진입니다. 보통 대피소 및 집회를 하는 장소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운동 모임, 어린이를 위한 음악 이벤트도 했습니다. 또한, 활동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일환으로, 여러가지 물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쿠루리라는 아티스트와 같이 만든 일본식 수건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이와키 시를 찾아오고 싶은 분들이 늘어났어요. 친구, 지인, 단체 등 방문한 사람들을 안내하는 활동을 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본 각 지에서도 왔고, 외국에서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특히 언론인들이나 그런 분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많이 찾아오십니다. 




이와키 시의 변화


사야카: 다음은, 예전부터 벚꽃이 아주 유명한 명소 사진입니다. 옛날부터 벚꽃으로 유명한 장소였는데, 원전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었죠. 그래서 지금도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히데미: 이 사진은 원전사고 후 1년이 지나고 찍은 사진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곳 출신이셨어요. 그런데 어머니의 고향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한번 오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벚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제가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저랑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분, 단 둘이서 갔습니다. 이곳은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입니다. 허락을 받고 보시다시피 방호복을 입고 들어갔어요. 방사능의 수치가 너무 높아서 최대 4시간 밖에 있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저기는 정말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이 없고 버려진 소굴 같았습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아 마치 세상의 끝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벚꽃은 계속 이쁘게 피고있었습니다. 너무도 이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동네에 원래 살던 분들 동네를 모르는 다른 지역에 살던 분께 보여드리고 싶어 사진전시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사람들은 대피해가지고, 곳곳에 흩어져 살고 계셔요. 그래서 한 군데에서 할 수 없어, 우리가 찾아가기로 했어요. 트럭에 전시공간을 만들고 트럭으로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동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당시는 사람들이 허가없이 못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벚꽃 축제도 열리게 되었어요. 


사야카: 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릅니다. 재앙이 일어난 지 6년이 지나서,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을 꾸준히 해서 방사능 수치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제염 작업은, 떨어진 풀입을 다 제거하고 땅을 갈아서 새로운 땅으로 묻어버리는 그런 작업을 말합니다. 과거 제가 텔레비전에서 본 뉴스에서 본 영상이 있었는데, 도로의 틈새가 있잖아요? 그 틈새에 쌓인 흙을 칫솔로 하나씩 떼어서 제염을 하는 그 작업을 수만 명의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이곳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들어가지 못 했던 장소가 조금씩 변화하게 되고, 사람들도 점차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리샐러드. 맛이 기가 막히다.




변화를 알리다


히데미: 보시다시피 저희들이 한 프로젝트들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한 활동이 대부분입니다. 무수부라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둘이지만, 프로젝트마다 많은 사람들이 관여를 해주시고 같이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계기도 트위터였습니다. 지금도 트위터, 페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해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부분은 방송, 잡지, 신문, 웹 등 다양한 매체에 가능한 많이 노출하고자 의식적으로 정보를 발신했습니다.


SNS, 미디어를 활용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재앙 이후 설립된 단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 활동이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재앙 이후 다들 아시다시피 후쿠시마로 검색하면 안 좋은 뉴스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SNS, 미디어로 노출을 해서 진짜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MUSUBU와 신념


사야카: 무수부를 하면서 맨 처음부터 소중히 여겼던 신념 두 가지입니다. “우리를 두근두근 설레게 하는 일을 한다.” “힘들지 않은 범위에서 활동한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요구받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설레는가를 기준으로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큰 예산도 없고, 큰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6년 간 많은 것이 변화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즐기면서 계속하는 것을 소중한 역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수부 활동은 저희 둘이 싸워서 영영 만나지 않게 되는 한 계속할 것 같습니다. 삶의 일부(Life Work)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질의응답 ***




Q. 재앙 이후, 이와키 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달라졌나요?


히데미: 저의 사례로 말씀드리면, 고향이 떠난 지 오래되었고 고향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재앙 전까지, 이와키 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습니다. 또한, 솔직히 자원봉사를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사야카: 처음으로 음식 나누기 자원봉사를 했을때 히데미가 처음 봤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둡게 “히데미입니다.” 라고 오더라고요. ‘이런 친구가 자원봉사를 하는 구나’라는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까 질문에 대답을 하면, 저는 계속 이와키 시에 살았는데요, 재앙이 오기 전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지역 출신 중 도시에서 살다가 돌아온 젊은 삼 사십대 안밖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서, 이와키 시에 스스로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마침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때 마침 SNS가 보편화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그때,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재앙이 직접 관련한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앙 이후 많은 개인 및 단체의 활동이 늘었다고 느낍니다. 마을 만들기 활동과 이벤트 행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후쿠시마에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가게를 연다거나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요.




이와키 시의 활동을 담은 사진들




Q.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정부, 지자체와 협력할 때, 어떻게 교섭하셨나요?


사야카: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면, 맨 처음 한 봉사활동센터는 지역 NPO와 협력해서 했습니다. 그쪽 젊은 세대가 물자를 나누어주는 활동을 보아서 함께 하자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히데미: 정보 발신의 부분에 있어서, SNS를 많이 활용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지만 마치 하는 것처럼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주셨습니다. 특히, 아저씨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Q. 무엇을 믿고 사람들은 돌아오는 것인가요?


사야카: 먼저 어디까지, 저희들의 개인적 의견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곳이 안전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준이라는 것은 나라에 따라서도 다르고, 저희 사이에서도 다릅니다. 한 가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지금 후쿠시마 현 안에서는 공공시설에는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기계가 꼭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치라는 것은 하나의 기준일수밖에 없고, 그것이 안전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개개인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가지 먹거리인데요, 후쿠시마에서 만들어지는 농산물들이 방사능 수치를 측정받고 있습니다. 나라로서는 쌀, 버섯 같은 것은 검사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채소들도 농가들이 모두 검사를 해서 안전한 경우에만 시장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어디까지나 기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사는 사람도 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 가정,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지금도 후쿠시마에 살면서 후쿠시마의 농산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쿠시마 현 이외에 사는 사람들도 농산물들을 사서 응원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 뿐 아니라 해외도 그러겠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Q. 2011년 3월 11일 전과 후, 가치관의 변화가 생기거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나요?


사야카: 후쿠시마에서 사는 분들은 재앙 이전과 재앙 이후를 나누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변화를 말씀드리면, 재앙을 맞기 전, 어쩔 수 없이 사귀던 인연을 다 끊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소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살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 지진의 감각이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발생하는 작은 지진을 계속 느끼면서 마음이 끔찍해지는 느낌은 계속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히데미: 상상을 초월한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재앙 전에는 쓰나미로 동네 하나가 사라진다, 고향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상상 초월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재앙 이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아영씨가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해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 겁니다.




Q. 다음 세대에 어떤 가치를 물려주고 싶은가요?


사야카: 저에게는 4살, 2살의 아이가 있는데 최근 첫째 아이가 이와키 시의 일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제 유치원을 다니는데, 매월 대피훈련을 받는대요. 거기서 쓰나미라는 말을 배우고 훈련도 받는다고 해요.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는 크고 있는 딸에게 지난 3월 11일, 6년 전에 있었던 지진, 쓰나미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재앙이 있었을 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했고요, 동시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모금을 해주셨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만큼 우리는 온 세상의 사람들이 도와줬다고 이야기했고, 제가 지금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입니다.


히데미: 지금 마땅히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앞으로 제가 할 활동으로서 그것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 ***




MUSUBU. 5월 27일, 우리는 연결되었다. 일본과 한국, 재앙이 발생한 곳과 발생하지 않은 곳,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분투하는 그네들과 나의 닮은 꼴을 하나하나 찾고 맞춰가며 그네들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 되었다. 더는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 외면하고 싶은 그곳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만드는 MUSUBU. 그들이 더 많은 이와 연결되기를, 그래서 희망을 건네주기를 기대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